감정을 자극하는 음악과 함께 학대받는 개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적인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마음 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동물에 대한 관심은 선한 행위이며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가 성경적 기준으로부터 급박하게 멀어짐에 따라, 도덕적인 가치가 뒤집혀 버렸습니다. 이 강력한 예가 바로 동물에게 사람과 동등한 권위나 더 높은 위치를 부여하자는 요구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사람을 모태 안이나 혹은 출생 하자마자 모태 밖에서 죽이는 행위를(낙태 혹은 출생 후 낙태) 점점 더 합법화하자고 하는 반면에, 온갖 종류의 동물, 심지어는 태어나지 않은 동물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과 법규들은 법전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수세대에 걸친 진화론과 인본주의의 영향 하에서, 동물의 권리에 관한 문화적 견해는 점점 지배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 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위한 사람들)의 주장은 이를 잘 반영합니다. “고통, 사랑, 즐거움, 외로움, 두려움에 대하여는 쥐나 돼지나 개나, 아울러 소년이 똑같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기본적으로 “동물도 사람이며” “사람도 동물이다”라는 의미입니다. PETA는 “식탁 위의 홀로 코스트”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그들은 이 바비큐 치킨을 유대인을 불태웠던 홀로 코스트와 동일시했습니다.

이와 같이 동물과 사람을 동일시하면서 “권리”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도덕”을 요구하는 진화론적 사고는 전혀 일관성이 없습니다. 만약 모든 생명체가 진화해왔고 서로 동등하다면, 동물 권리 옹호 단체는왜 곤충이나 식물을 죽이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습니까? 만약 사람이 단지 동물에 불과하다면 훔치고, 죽이고, 근친간 결혼하고, 사람을 먹는 것을 왜 허용하지않나요? 동물들은 모두 이러한 일들을 합니다. 만약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죽인다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사람의) 어머니 태에서 아기를 죽이는 것에 대하여 잠잠하거나 오히려 동의합니다. 그러나 동물이나 사람이 모두 귀하다면, 자신의 아기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분명히 태어나지 않은 대머리 독수리나 바다거북이들에 대하여 걱정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동물들의 알을 “건드리기만” 해도 감옥에 갈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가 대두됨에 따라, 역설적이게도, 서구 사회에서 인류의 가치는 역대 최저치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상황에서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본다면, 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권리라고 하는 것은 오직 성경적 세계관 하에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추상적 개념으로써, 어떤 대상에 대한 부인할 수 없으며 절대적이며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말합니다. 권리에 관하여 논쟁하고 있는 세속주의자들은 결국에 그 권리를 기독교적 가치로부터 빌려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동물들이 우리와 동등하다면, 그들은 왜 동물들 간의 권리에 대하여는 논쟁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동물들을 포함한 창조물을 통치할 독특한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창1:26). 이것은 잔인함, 억압,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혜택, 사람의 번성, 창조주의 높임을 위하여 순종과 사랑과 믿음으로 행해져야 하는 청지기적 사명입니다.

동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하는 것은 옳지만,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며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신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자들은 심오하고, 무한히, 영원한 훨씬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하나님 자신이 인류에게 구원의 다리를 제공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